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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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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기사
등록일
08-03-18 14:19
작성자
관리자
조회
2,587
첨부파일
<20여년 다듬은 시어들로 빚어낸 서정 長詩>

2006년 등단한 신인 박상호씨



국내 드문 200행 이상 시 잇단 발표 "웅대·숭고한 취향의 품위있는 시
장시의 가능성 이해·확산에 기여"
요즘 우리 시단에서 좀체 보기 힘들어진 것이 장시(長詩)다. 이유는 잘 알 수 없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시로도 원하는 서정을 담아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짧고 긴 것'은 시의 본령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단 한쪽에서는 '우리 시가 너무 짧다'거나 '너무 짧아지고 있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주로 이지적이고 현대적인 시를 쓰는 시인들 중에서 이런 의견이 나온다. 어쨌든 장시는 호흡이 길고, 완결성을 기하기 위해 오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며, 약점이 드러날 공간이 많기 때문에 쓰기 쉽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독자의 눈길을 잡기도 상대적으로 어렵다.

보기 드물게 긴 시를 쓰는 장시의 시인이 부산 문단에 나타났다. 박상호(54) 시인은 2006년 시 전문 계간지 '열린시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등단했다. 부산의 건축업체인 (주)신태양건설 대표이기도 한 그는 당시만 해도 이색적인 신인 정도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개성을 드러냈다. 장시가 그의 영역이었다. 박 시인은 '부산시인' 2007년 가을호에 특별기고 형식으로 '테메테르의 진주빛 모성'을 실었다. 이 시는 202행(10쪽)에 달한다. 이 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땅의 여신 테메테르(데메테르라고도 번역함)의 모성애를 장중하고도 서정적인 분위기로 써내려간다. 임명수 시인은 시평에서 "'너무나 정연한 형식미와 고담(高談)스런 필치로 해서' 아쉬움도 남지만 '웅대하고 숭고한 취향을 지닌 품위 있는 시'"라고 소감을 밝혔다.
시인 박상호씨(사진 위)와 그의 장시 원고.

박 시인은 잇달아 최근 나온 '열린시학' 봄호의 '이 시인을 주목한다' 코너에 장시 '아폴론과 다프네'를 수록했다. 이 시는 294행에 이른다. 16쪽 분량이다. 4700여 행에 이른다는 신동엽의 '금강' 등에 비할 수는 없지만 최근 한국 문단에서 볼 수 없던 규모다. 이 시는 아폴론과 다프네의 신화를 애절한 사랑 이야기의 장시로 변주했다. 문학평론가 황인원은 이 시에 대해 쓴 작품론에서 '일반적인 서사시에서 사용하는 구조가 아니라 기존의 내용을 토대로 하되 새로운 시인만의 이야기 골격을 넣었다는 점에서 서사구조를 활용한 서정의 세계'라며 '이 시대에 장시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확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긍정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 같은 장시들이 완성돼 활자로 실리기까지 20~30여 년이 걸렸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박 시인은 "대학 시절 이후 꾸준히 써온 장시들을 오랜 기간 틈날 때마다 가다듬어 이번에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까지 2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박 시인은 "장시 원고를 여러 편 갖고 있다"며 "장시지만 서사시는 아니며 고운 우리말을 찾아 끝없이 조탁하고 선명한 서정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고 밝혔다. 황 씨의 분석대로, '서사를 포장한 서정'이다.

실제로 '아폴론과 다프네'만 봐도 '아리잠직'(아담하고 얌전하며 어여쁘다), '소사스럽다'(행동이 좀스럽고 간사한 데가 있다) '익더귀'(새매의 암컷) '찬섬'(빛남) '말마'(급소) '애와티다'(북받치다) 등 사전에 의지해야 선명하게 알 수 있는 우리말과 시어들이 가득하다. 박 시인은 "밀턴의 '실락원' 등을 전범으로 삼을 만큼 좋아하지만 그런 대작들과는 또 다른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개성을 지닌 시를 쓰고 싶다"며 "우리 시의 호흡이 짧은 것이 오히려 세계와 소통하고 위상을 높이는 데 장애가 되는 것 같아 장시의 세계를 더욱 갈고 닦고 싶다"고 말했다. 불쑥 문단에 나타나 드문 장시의 세계를 펼치고 있는 그가 작품 세계를 어떻게 갈고 닦고 그 장시들로 우리 시단에 어떤 의미를 보탤지 관심을 끈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입력: 2008.03.1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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