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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인터뷰 기사
등록일
12-03-26 10:51
작성자
관리자
조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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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부산에서는 그를 두고 시인, 건설사 최고경영자(CEO), 유쾌한 사회공헌 고액 기부자라고들 한다.
그는 부산에서 활발한 시작(詩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것도 많은 시간과 지식, 끈기, 노력이 필요한 장편 서정시를 주로 쓴다. 지방에서 드물게 1000억 원대 수주 능력을 갖춘 데다 신용평가등급 ‘A。’를 유지하는 중견 건설업체도 경영하고 있다. 2010년 부산에서 세 번째로,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된 것도 바로 그다. 부산지역 건설업체인 신태양건설 박상호(58) 회장 이야기다.

박 회장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시인 CEO란 점도 그런데다 부산대 의예과를 중퇴하고 갑작스레 건설업이라는 길을 택했다는 점도 그렇다. 임직원 70여 명을 거느린 박 회장은 집무실 이외에 시를 쓰기 위해 한적한 곳에 별도 집필실을 두고 있다.
2006년 50대로 늦깎이 시인 등단
2006년 계간 ‘열린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2009년 ‘동백섬 인어공주’(도서출판 작가마을)라는 시집도 발간했다. 등단이 늦었지만 실제로는 20대인 1970년대 중반부터 시를 써왔다. 발표하지 않았을 뿐이지 원고지 300장 분량의 작품을 비롯해 지금까지 원고지에 쓴 작품 분량이 1만 장에 달한다.
평단에서도 늦깎이 시인의 시를 높게 평가한다. 남송우 부경대 교수(문학평론가)는 박 회장의 시에 대해 “성향이 긍정적이고 능동적이며 역동적인 이미지로 넘쳐난다”고 말했다. 한창옥 시인은 “다양한 가치와 자기의 시심(詩心)을 초월적 조화로 이끌어내고 있다”며 “설화에 새로운 시대의 영혼을 불어넣어 흥미 있는 이야기 골격을 다듬어가고 있다. 단순한 형식미보다 시인의 내면적 사고에 상상력을 합성한 특이한 구성으로 진한 생명력을 잉태시키고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부산의 대표 건축물을 논할 때 박 회장의 이름을 빼놓아선 안 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열린 곳으로 유명한 해운대 동백섬 누리마루를 신태양건설이 공동 시공했다. 지난해 ‘2011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 작품으로 뽑힌 아미산 전망대(사하구 다대동) 역시 박 회장이 시공한 건물이다. 두 건축물은 요즘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기부활동도 가장 활발한 부산지역 CEO 가운데 한 명이다. 모교인 부산대를 비롯해 부산지역 주요 대학에도 발전기금을 쾌척하고 있다. 소년소녀가장 돕기, 저소득층 지원, 장학금 수여 등 지금까지 기부한 액수만 10억 원이 훨씬 넘는다.
박 회장에게서 4년째 매달 30만 원씩을 후원받고 있는 조손가정 김모(75) 할머니는 “손자가 급식비를 못 냈다고 울 때 죽고 싶었다. 박 회장을 보고 손자에게 ‘너도 꼭 남에게 도움 되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고 말했다.
부산 연제구 거제동 신태양건설 회장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시와 건축, 그리고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의학의 길 앞에서 시와 건축을 선택하다
▼ 1974년 부산대 의예과를 2년만 수료하고 갑자기 대학을 떠나 건설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시와 깊은 관계가 있었나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고교 2학년 때 홀로 계시던 어머님이 대장암으로 돌아가시면서 외동아들인 제게 유언 같은 한마디를 하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구나, 내가 시인이라면 시라도 한 편 남기고 싶구나’라는 말이었어요. 평소 문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느낀 게 많았어요.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렵고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만든 암을 극복하기 위해 국립대이고 집 근처에 있는 부산대 의대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의예과에 다닐 때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고가 났어요. 과외선생일 때 가르치던 제자 고교생과 해운대해수욕장에 갔는데 그 아이가 심장마비로 급사한 거예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너무 이른 나이에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으면서 그 길로 의대를 포기하고, 고교시절 때부터 늘 꿈꿔왔던 문학의 길로 가기로 결심했죠. 그리고 부모님이 어릴 때 돌아가신 데다 홀로 남은 제가 비싼 의대 등록금을 낼 엄두도 못 냈습니다. 후회도 했지만 미련은 없었어요. 그리고 행복하게 시를 써가는 저 자신을 볼 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곧바로 등단하시지는 않고 건설업계 쪽에서 많은 일을 하셨군요.
“1975년 건축내장재 생산 공장에서 외삼촌과 함께 사업을 했어요. 거래하던 회사가 ‘사정이 어려운데 자재 값 대신 전문면허라도 받아달라’고 부탁한 게 제가 건축업을 하게 된 계기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짬짬이 글을 쓰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시인이 되려면 경제적 능력부터 키워라’고 하기에 그렇게 사업가의 길을 갔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아무리 바빠도 괴테, 셰익스피어, 단테, 밀턴이 쓴 고전 작품은 꾸준히 읽었습니다. 이런 위대한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내가 시를 쓰게 된다면 장시(長詩)를 선택할 것이다’라고 다짐했죠. 음주가무에는 재능이나 취미가 없어 틈틈이 시 창작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는 제게 황무지 같은 사회에서 오아시스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 존재입니다. 또한 시는 나 자신뿐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 위로를 안겨줬습니다. 지금도 시인과 CEO라는 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시인을 선택할 겁니다. 주위에서 그렇게 불러주는 게 더 기쁩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직업인 것 같고,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에서 길을 찾은 감성 CEO
▼ 발표한 시들을 보면 대부분 장시(長詩), 그리고 서사시가 아니라 서정시입니다. 긴 문장의 시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우리나라 시인 가운데 장편 서정시를 쓰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서정성을 갖춘 긴 시야말로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고전적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긴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야말로 대단한 시인이 아니겠느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장시(長詩)를 찾는 독자는 별로 없죠. 하지만 장시는 영감의 연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스스로 감흥을 받을 때도 많아요. 장시를 쓸 때 영감을 얻기 위해 불경이나 그리스 신화를 많이 읽는 편입니다. 제가 20대 때부터 쓰고 있는 ‘피안(彼岸)의 도정(道程)’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원고지 300장 분량인데 지금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피안의 도정을 쓸 때마다 생각나는 건축물이 있어요. 130년째 건축 중인 건축가 가우디의 걸작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명물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짓는 것처럼 저도 그런 예술혼을 추구하고 싶어요. 한국 시가 세계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장시가 더욱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시의 호흡이 짧은 것이 되레 세계와 소통하고 위상을 높이는 데 장애가 되는 것 같아 장시의 세계를 더욱 갈고 닦고 싶은 게 제 목표입니다.”
▼ 30년 넘게 시를 써오셨는데, 시에서 어떤 교훈이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나요?
“건설사 사장이라면 보통 거칠고 황량하다는 이미지가 많을 겁니다. 주변에 건설사 CEO는 많은데 시를 쓰는 건설사 CEO는 없어요. 제가 대중을 위한 시는 쓰지 않는 편이에요. 시를 위한 시를 쓰는 편이고 앞으로도 이런 기조는 계속될 겁니다. 건설업을 하다보니 주변에서 음해를 받을 때도 많았지만 그때 나를 위로해준 것은 시였습니다. 시를 쓸 때만은 말로 할 수 없는 희열과 행복을 느꼈어요. 제가 시를 쓸 때 법칙이 있다면 길지만 시의 운율이 살아 있고 정형화된 형식을 지키려고 한다는 겁니다. 시가 안정적일 수 있고 시의 목적이나 주제가 그대로 녹아들어 살아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저는 제 영혼이 가장 순수하고 해맑을 때만 시의 삼매경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주 생각해요. 제 사상과 철학, 동경, 비탄, 염원 등이 시에 용해됩니다. 제 자신을 찾는 구도의 정점에도 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르키소스(나르시스)처럼 제 시를 사랑합니다. 만약 시의 신이 있다면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내면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찬연한 보석 같은 시를 쓰게 하소서’라는 기도를요. 밀턴의 ‘실락원’같은 시도 쓰고 싶습니다. 긴 호흡으로 삶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고유의 말을 살리면서 서정적으로 던지는 대작을 남기는 게 제 꿈입니다. 건축물로 비교하자면 앞서 말했듯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같은 그런 작품을요. 제 자신에게 가치 있는 도전일 겁니다.”
▼ 시집 ‘동백섬 인어공주’를 읽어보니 시어에 한글을 많이 사용했더군요. 이 시집을 펴낸 계기는 뭡니까.
“우리말의 의태어, 의성어는 시어 그 자체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발굴해서 앞으로 더 많이 사용할 겁니다. 독서를 통해 우리말을 발굴하거나 아니면 사전을 뒤져서 찾아내기도 합니다. 제 장편 서정시 ‘아폴론과 다프네’를 보면 아리잠직(아담하고 얌전하며 어여쁘다), 소사스럽다(행동이 좀스럽고 간사한 데가 있다), 익더귀(새매의 암컷), 찬섬(빛남), 애와티다(북받치다) 등 우리말 시어가 많습니다. 다른 시에도 읽는 분들이 국어사전을 찾아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순 우리말이 많은데 숨어 있던 우리말을 시어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건축, 예술을 품다
해운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동백섬을 거닐면서 동백꽃을 감상하고 부근에 있는 인어동상을 바라보면 시적 영감이 샘솟듯 다가옵니다. 피그말리온이 아름다운 여인 조각상을 사랑해 간절히 기원했더니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모한 그리스 신화처럼 보름달이 비추는 인어동상은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그게 ‘동백섬의 인어공주’라는 시입니다. 어떤 명예나 부보다 가치 있는 것이 시라고 생각하며, 욕심을 낸다면 동백섬의 시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 시인과 건설사 CEO로서 활동하면서 시와 건축의 공통분모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건축물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그래야만 합니다. 건축물도 자연과 어울리는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건축물을 지을 때 혼을 담아서 예술품으로 승화시켜달라고 직원들에게 주문합니다. 그리고 시공을 할 때마다 시적인 감성을 건축에 자꾸 접목하고 싶어집니다.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을 받은 아미산 전망대를 공사할 때도 직원들에게 작품으로 생각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누리마루를 시공할 때는 누리마루를 찬미하는 시를 썼습니다. 부산 화명동과 좌동, 센텀시티에 자연미를 살린 건물을 여러 채 짓고 있는데 모두 예술품으로 승화시키고 싶습니다. 누리마루처럼 건물 각각에 주는 시를 지을 겁니다. 그리고 시는 나 자신을 잘 표현하는 영혼의 애절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 그럼 평소 갖고 있는 건축관도 시와 관련이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먼저 시를 짓듯이 건축에 임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건축물 가운데 똑같은 조건을 갖춘 건축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크기나 외관, 내부 설계가 같더라도 위치까지 같을 수 없어요. 한 편의 시처럼 유일무이한 건축물을 짓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건축물이 완성되기 위해선 시를 이루는 시어처럼 수많은 자재가 필요합니다. 이는 곧 선택이며 선택은 곧 신용입니다. 마지막으로 건축물은 매우 긴 생산기간과 사용기간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시상일지라도 다듬지 않고서야 심금을 울리는 좋은 시가 나올 수 없습니다. 작가정신을 건축에 담아내려고 합니다. 직원들에게도 성실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감성경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부에서 참 나를 발견하다
▼ 제2도시인 부산에서 고액 기부자 모임의 세 번째 회원이 되셨습니다.
“의대를 중퇴하고 처음 사업을 할 때 외삼촌이 당시로서는 큰돈을 사업 밑천으로 주셨습니다. 나중에 성공하면, 내 형편이 나아지면 꼭 사회에 보답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정확하게 얼마를 기부했는지 모르지만 10억 원은 족히 넘을 겁니다. 수시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움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저도 어렵게 성장했지만 외삼촌을 비롯해 많은 분의 격려와 희망, 동기 부여 덕분에 지금의 제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사회가 베풀어준 겁니다. 지역사회에서 성장한 기업이 지역발전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개인과 지역과 더불어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혼자 잘사는 게 아니라 다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게 정답입니다. 수익이 많으면 사회에 당연히 돌려줘야 합니다.”
고 최동원을 생각하다
박 회장이 그동안 기부한 액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연2000만 원씩 5년간 1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한, 아너 소사이어티 세 번째 회원이다. 부산에서 신태양건설보다 매출 규모가 큰 기업이 많은데도 세 번째 회원이 됐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지역대학 발전에도 관심이 많아 부산대 발전기금 2억4000만 원, 부산가톨릭대·부경대·한국해양대에도 발전기금을 쾌척했다. 이밖에 백혈병 어린이 돕기, 동아일보사 소년소녀가장돕기 지원, 저소득층 위한 쌀 전달, 불우이웃 돕기 물품 기탁, 독도학당 강좌 개설 및 후원, 초등학교 장학금 지원 등 다양하다.
▼ 부산에서 범시민운동으로 진행되고 있는 ‘고 최동원박물관 공동추진위원장’을 맡고 계시더군요.
“한국 야구의 전설이자 부산 야구의 영웅이었던 최동원을 부산시민의 힘으로 고향 부산으로 데리고 오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해 공동위원장직을 맡았습니다. 최동원은 모교(경남고) 후배이기도 합니다. 강속구와 변화구로 야구계에서 신화를 쓰고 전설이 된 인물입니다. 부산이 야구도시로 성장하고 롯데 자이언츠가 인기 구단이 된 데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최동원 후배가 보여준 야구에 대한 열정은 곧 부산의 정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 번도 고인을 본 적은 없습니다. 단지 팬일 뿐입니다. 최동원박물관이 부산에 조성될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기에 돈을 좀 내놓았습니다. 앞으로 자발적인 시민모금을 통해 건립기금을 마련하면 부산시에 박물관 부지를 요청할 방침입니다.”
▼ 야구에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하하. 사실 경남고 졸업생 기수별로 꾸려진 야구팀 ‘K리그’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기수별로 매달 첫째 주에 경기를 합니다.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2루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른손을 보여주며) 얼마 전에는 도루하다가 슬라이딩 과정에서 오른손 뼈 골절을 당하기도 했지요. 글쎄요, 제가 평균 실력 정도는 될 겁니다. 우리 회사도 사회인 야구팀에 가입돼 있습니다. 신태양건설 이름을 따서 ‘뉴선’인데 거기에서도 2루수로 뛰고 있습니다. 사회인야구팀이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고 간혹 40대가 있긴 한데…. 제가 사회인 야구팀 최고령 선수인 셈이죠.”
지역 건설사로는 드문 무차입 경영 신화
▼ 지역 건설사로는 드물게 무차입 경영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1년 수주액이 1000억 원을 넘고 있습니다. 올해는 도급 순위가 올라갈 것 같습니다. 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까지 대출액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차입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 건설사 가운데 전국적으로도 드문 일일 겁니다. 비결은 특별한 게 없습니다. 계속 흑자 경영을 이어나가면 가능합니다. 신태양건설은 1996년부터 계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적자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신용등급도 A。를 기록합니다. 이 같은 실적은 건설업체로서는 드문 데다 쉬운 일도 아닙니다. 유동자산, 영업이익, 매출, 영업자금, 차입금 현황에서도 A급 경영을 합니다. 재무구조가 탄탄하면 성실 시공을 할 수 있고 건축공사비를 아낄 수 있습니다. 결국 건축주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에 우리에게 공사를 맡긴 사람들은 다시 건축 상담을 하러 옵니다. 건설업은 2등을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완벽 시공을 목표로 고객에게 믿음을 줘야 1등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건축물이 급속한 산업화에 떠밀려 휴머니즘을 담아내지 못하지만 시를 쓰는 마음으로 자연을 닮은 휴머니즘 환경을 만드는 데 노력할 겁니다.”


윤희각│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toto@donga.com